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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총 설 Ⅲ . 중부 지역 3·1운동의 전개 1. 서울 1) 3·1운동 발의와 준비 ① 천도교측 발의 : 1919년 1월 하순 손병희(孫秉熙) 집에서 최린(崔麟)·권동진(權東鎭)· 오세창(吳世昌) 등이 독립운동 협의가 있었다. 그 내용은 일제로부터 독립국 건설을 위한 동 지 규합, 조선민족대표자 손병희 등 명의의 조선 독립 선언과 전국 배포, 독립만세운동으로 독립 열망 표현, 일제 정부·귀중 양의원·조선총독부 및 강화회의 열국위원에게 조선 독립 의견 제출, 미국대통령 윌슨에게 독립청원서 제출 등이었다. 그 계획과 실행은 최린이 담당 하였다. 최린은 2월 상순 중앙학교장 송진우(宋鎭禹)·교사 현상윤(玄相允)·최남선(崔南善) 과 회합하였다. 2~3일 후 이들은 박영효(朴泳孝)·윤용구(尹用求)·김윤식(金允植) 등 한말 요직자, 기독교도·천도교 주요 인사를 조선민족대표자로 독립을 선언하고, 그 명의로 독립 선언서·의견서·청원서를 작성하며, 문서의 기초는 최남선, 인물 교섭은 최린·최남선·송 진우, 기독교측 교섭은 최남선이 담당하기로 하였다. ② 천도교와 기독교의 연합 : 최남선은 장로교 이승훈(李昇薰)에게 연락을 하였다. 그는 2 월 7일 ‘오산학교 경영’ 관계로 이승훈의 상경을 현상윤에게 의뢰하자, 현상윤은 정노식 집으 로 김도태를 찾아가 부탁하고, 김도태는 다음날 출발하여 2월 9일 정주에서 오산학교 교사 박현환(朴賢煥)을 만났고, 박현환은 선천에 있는 이승훈에게 전달하였다. 이승훈은 2월 11일 상경하여 김성수(金性洙) 별채에서 송진우를 만나 기독교측 참가와 동지 규합을 부탁받고, 즉시 선천으로 갔다. 그는 2월 12일경 양전백(梁甸伯) 집에서 양전백·이명룡(李明龍)·유여 대(劉如大)·김병조(金秉祚) 등에게 독립운동계획을 알려 유여대·김병조는 이승훈에게 일 임하고, 양전백·이명룡은 함께 상경하기로 하였다. 또 14일에는 평양 기홀병원에서 길선주 (吉善宙)·신홍식(申洪植) 등과 만나 경성으로 가기로 하였다. 2월 17일에 재차 상경하여 김 승희(金昇熙) 집에서 한 두 번 만난 송진우의 태도와 최남선을 만나지 못하여 의혹을 갖기도 하였다. 2월 20일 밤 박희도(朴熙道) 집에서 남감리파 오화영(吳華英)·정춘수(鄭春洙), 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