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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총 설 일 마산리 이완조(李完祖) 등 이장들에게 배포하였다. 송찬용은 4월 15일 후일리 주민에게 “명일 읍내로 가서 독립만세를 부르라”고 설득하였다. 이들은 4월 16일 오전 10시경 주민 약 200여명과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14) 간성군 신북의 김동원(金東元)이 3월 초 고성읍내에서 독립선언서 1매를 입수하였다. 그는 3월 13 일 밤 집에서 ‘고성재판’ 50매를 만들어 다음날 고성읍에서 지경리까지 게시판에 붙이거나 길가에 살포하여 독립운동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15) 영월군 수주에서는 독립운동 인사 가운데 최고령자인 78세의 천선재(千善在)가 활발한 독립만세 권유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독립운동에 동참을 결심하고 4월 8일 수주 법흥리 최춘일(崔 春日), 9일 남변 신일리 최성오(崔成五), 10일에 수주 무릉리 현성준(玄聖俊)에게 전국 각지 에서 애국지사가 죽을 힘을 다하여 활동하는데 “그런데 우리 지방에서는 독립만세를 부르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것은 실로 유감되는 일이다. 한국 국민된 자, 애국심을 분발하여 오 는 주천리 장날 아침에 이 시장에서 나를 위시해서 군중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려고 하 니 이에 참가하라”고 독려하였다. 양변에서는 4월 21일 박광훈(朴光勳) 주도로 군수 일행에게 독립만세를 부르게 하고 ‘독립 만세연명부’에 서명 날인하는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4월 20일 오전 9시경 이병익(李 炳翼)·이용헌(李容獻)·박재호(朴在鎬)·박수영(朴受永) 등을 불러 “이웃 고을에서는 모두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있는데 우리들도 구한국 신민으로서 만세를 외칠만한 의무가 있다” 고 발의하고 군수 석명선(石明瑄)이 수행원과 면내 방문을 계기로 독립만세를 계획하였다. 이어 ‘독립만세를 함께 부른다’는 승낙서에 박수경(朴受景) 등 15여명의 서명 날인을 받고 주 민들에게도 찬성을 얻었다. 이들은 4월 21일 오전 11시경 약 3~40명과 금마리에서 주천리 로 이동하는 군수와 군서기·구장·면서기 일행을 쫓아갔다. 이병익·이용헌·박수영 등이 일행을 조상근(趙相根) 집 노상에서 막았다. 이병익이 종이 태극기를 군수 손에 쥐어 주고, 박광훈이 군수에게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라”고 요구하며, 박광훈 등 5~6명이 3~4척 몽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