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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독립운동 관련 판결문 자료집 (3·1운동Ⅰ ) 성면 면내의 순사주재소·면사무소·우편소 등을 파괴하라” 등 연설을 하였다. 이에 군중들 은 돌, 몽둥이 등을 가지고 양성으로 갔다. 한편 양성의 덕봉·산정·추곡·도곡리 주민들 은 각 마을에서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거나 마을 산에서 독립만세를 외친 후 양성으로 갔다. 2~300명 면민들은 9시경 읍내에 모여 9시 반경 주재소와 보통학교로 가서 조선독립만세 를 고창하고 9시 50분경 마을로 귀가할 때 원곡 면민들이 읍내로 들어와 합류하였다. 양 면 민들은 오후 10시경 주재소 앞마당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순사의 해산 명령에 군중들 은 격렬히 독립만세를 외쳤다. 남현서가 “주재소를 쳐부숴라”, 이덕순·홍창섭·이유석 등 이 “방화하라”, 이양섭(李陽燮·明汝)·홍근배(洪根培)가 “주재소에 불을 놓아 불태우면 어 떤가?”, 조경수(趙敬洙)·정문명(鄭文明) 등이 “방화하자”고 소리쳤다. 군중들은 투석하고 사무실에 불을 놓고 석유를 뿌리려 집기류·서류 등을 파기하였다. 또 솔잎으로 불을 피워 주재소에 불을 놓았다. 주재소 전체가 불길에 휩싸였을 때 군중들은 이희룡·최은식·이덕 순 등의 주도로 우편소로 이동하여 투석하고 유리창 등 시설물·서류·가재 도구들을 파손 시키고 밖으로 던져 불태우고, 금고를 도끼 등으로 파괴하고 전주 3개를 넘어뜨려 소각하였 다. 이유만은 일장기를 소각하였다. 이어 박용업·이성률 등 2,500여명이 잡화·매약상 외 리여수(外里與水) 집에 오후 11시경 도착하여 다음날 오전 2시까지 상점에 투석하고 상품을 파손하고 밖에서 모닥불에 태웠다. 또 홍경운 등은 2,000여명을 이끌고 대금업자 융수지(隆 秀知) 집에 가서 돌을 던지고 벽·장지문을 부수고 가재를 파기하거나 소각하였다. 이후 송 우필 등은 다시 원곡면사무소로 가서 다음날 오전 4시경까지 만세를 부르고 투석하여 시설 물·건물을 파괴하고 사무 도구·서류 등을 소각하였다. 일부 군중들은 양성면사무소에 투 석하고 서류·물품을 파기하거나 밭에서 태우는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일죽에서는 4월 2일 곽대용(郭大鎔)·석동성(石東聲)·오순경(吳順景) 등 주도로 독립만 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곽대용은 오전 1시경 장암리 주민 200여명과 주천주재소에서 조선독 립만세를 외쳤다. 석동성·이수봉(李壽奉)은 주천리 주민 100여명과 주재소·면사무소 앞에 서 김완석(金完錫)이 준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오순경도 밤에 200명과 독립 만세 함성을 외치며 유영창(柳永昌) 등과 투석하여 면사무소·주재소에 각각 유리문 5장과 3장를 파손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