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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독립운동 관련 판결문 자료집 (3·1운동Ⅰ ) 람시켰다. 이튿날 통문에 따라 1,000여명이 면사무소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고, 이어 조계식 등은 면내 일대를 순회하였다. 영북에서는 4월 3일 밤 안응건(安應乾)이 태극기 25기와 “독립만세를 부르니 모이지 않으 면 방화한다”는 「협박문」을 만들었다. 다음날 밤 태극기를 자일리 각 집에 게양하고, 협박문 을 마을 게시판에 게시하여 만세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18) 안성군 읍내에서는 3월 28일부터 4월 2일까지 1주일 동안 동·서·장기리를 중심으로 읍내 일원 에서 집중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3월 28일 서순옥(徐順玉)이 동리(東里) 주민 약 20명과 산위에서 조선독립만세를 부른 것을 시작으로 3월 29일에는 진공필(陳公弼)이 장 기리에서 수십 명과 독립만세를 외쳤다. 3월 30일에는 김진수(金鎭洙)가 장기리, 이경수(李 敬洙)가 동·서·장기리 등에서 약 5~600명과 순회하며 독립만세를 주도하였다. 이성옥(李 成玉)은 밤에 홀로 석정리 산꼭대기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고 이어 서리로 가서 조선독립만세 를 외쳤다. 이때 수백 명이 모여 안성경찰서·군청에서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3월 31 일에도 이성옥은 수백 명과 독립만세를 부르고, 이택승(李宅承)에게 “자동차로 수비대를 운 반함은 조선민족 독립운동에 방해하는 것이다. 영업을 중지하라. 만약 이에 불응하면 집에 불을 질러 태워 버리겠다”고 압박하고, 중국인 잡화상 왕수산(王壽山)에게 가게를 닫도록 하 였다. 이외 김재룡(金在龍)·김정현(金正鉉) 등도 읍내에서 주민과 만세를 부르고 마을을 순 회하였다. 4월 1일에는 서순옥·김진수·이경수 등이 읍내 동·서·장기리 등 일원에서 태 극기를 흔들고 마을을 순회하며 한국독립만세를 외쳤다. 특히 이성옥은 서리 노상에서 “수 비대가 도착하였다고 조선민족 독립운동을 중지함은 마땅하지 못하다. 분기하여 이 운동에 참가하여 진력하라!”고 연설을 하였다. 4월 2일에는 김성문(金成文)이 장기리시장에서 주민 들과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죽에서는 4월 1일·2일 양일간 죽산리를 중심으로 여러 인사들이 독립만세운동을 전개 하였다. 4월 1일 양재옥(梁在玉)·안재헌(安在憲)이 죽산공립보통학교에서 학생 약 50명과 독립만세를 외쳤고, 이기훈(李起薰)·이응식(李應植) 등이 두현리 도로 부역을 하던 수백 명 과 죽산리 주재소·면사무소에서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4월 2일에는 죽산시장·주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