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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독립운동 관련 판결문 자료집 (3·1운동Ⅰ ) 동, 최덕종은 30매를 운니동에서 배포하였다. 김창진(金昌珍)은 「자유민보」 제1~5호까지 약 100매씩을 최한석(崔漢錫)에게 교부하여 동대문에 배포하였다. 최진순(崔瑨淳)은 4월 2~3 일 김기선(金箕鮮)에게 받아 둔 「경고문」·「반도의 목탁」·「조선독립신문」 등을 이동석(李東 錫) 등에게 교부하였다. 김기영(金基英)도 「반도의 목탁」을 4월 10~14일 사이에 송현동·기 타 주민에게 배포하였다. 허익환이 4월 7일 밤에 「조선민국임시정부포고문」·「도령부령 제 1호」·「도령부령 제2호」을 합철한 400통을 배포하였고, 4월 9일에는 남미창정에 「조선민국 임시정부포고문」·「도령부령 제1호」가 배포되었다. 서대순(徐大順)은 4월부터 10월까지 배 운성(裵雲成)·김해룡(金海龍)의 「자유민보(自由民報)」 약 2,000매, 「혁신공보(革新公報)」 약 3,000매를 학교 소사실에서 인쇄하였다. 2. 경기도 1) 개성군 개성에서 독립선언서는 3월 1일 어윤희(魚允姬)에 의해 배포되었다. 그녀는 2월 26일경 독 립선언서 배포를 부탁받고 3월 1일 신관빈(申寬彬)에게 협조를 부탁한 후 오후 2시경 독립선 언서 2,000매를 받아 만월·북본·동본정에 배포하였다. 개성에서는 3월 3일·4일 양일간 학생들의 주도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3월 3일 에 송도고등보통학교와 호수돈여학교 학생들이 남대문부터 읍내까지 독립만세를 고창하여 참여 군중이 약 2,000명에 이르렀다. 오후 6시경 약 50명 학생이 일장기를 찢고, 9시 30분 무렵에 남본정파출소에서 약 1,000명이 만세를 불렀으며, 자전거를 타고 가는 우편배달부를 폭행하였다. 강부성(姜富成)·신동윤(申東潤) 등이 읍내를 활보하며 헌병대·경찰서 등에서 만세를 부르고 일장기를 파기하며 일본인을 구타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튿날에 도 오후 2시 무렵에 송도고등보통학교 교정에서 4학년이 주도한 약 100명 학생을 중심으로 약 500명 군중이 태극기를 흔들며 북본정에서 병교·식산은행·고려교·남대문 부근까지 여러 곳에서 독립 연설을 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