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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총 설 을 시켜 개성 강조원(姜助遠)에게 보냈다. 강조원이 3월 1일 아침 신공량에게 부탁하였으나 배포자 물색이 어렵다며 반환하여 북부예배당 지하실에 감추었다. 신공량은 정오경 권애라 (權愛羅)에게 배포자가 없어 곤란하다고 알렸다. 이를 권애라에게 들은 어윤희(魚允姬)가 ‘그 선언서 배포의 임무를 맡겠다’고 하였다. 이에 신공량은 지하실에서 6~70매를 꺼내어 권애 라를 통해 어윤희에게 교부하고, 어윤희는 북본정과 남대문사이에 통행인에게 배포하였다. 또 오화영은 박희도 집에서 독립선언서 약 2~300매를 받아 곽명리(郭明理)에게 원산에 전달을 부탁하였다. 정춘수는 2월 28일 밤 곽명리가 가져 온 독립선언서를 보고 곽명리·이 가순에게 배부를 촉구하였다. 이가순은 3월 1일 원산시장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배포 하였다. 윤원삼은 2월 27일 평양 숭현여학교에서 정일선(丁一善)·도인권(都寅權)·박인관(朴仁 寬) 등과 회합하고, 2월 28일 정경필(鄭京弼)에게 독립선언서 200매를 받았다. 3월 1일 오후 2시 천수백 명이 숭덕학교 운동장에 모여 김선두(金善斗)가 ‘독립운동발표식을 한다’ 선포하 고, 정일선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강규찬(姜奎燦)이 연설을 하고, 윤원삼은 선언서를 배 포하였다. ③ 불교 : 한용운(韓龍雲)은 2월 28일 이종일에게 3,000매를 받아 자택에서 오후 8시경 중 앙학교 오택언(吳澤彦)·정병헌(鄭秉憲) 등 수명에게 전달하였다. 오택언은 기숙사생 40여 명에게 1매씩 배포하고, 3월 1일 오후 2시 파고다공원에서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내를 행진하라는 뜻을 전하고, 3월 1일 밤 수명과 선언서 100매를 청진동 기타 민가에 배포하였 다. ④ 학생 : 2월 28일 밤 승동예배당에서 중등 정도의 학생들에게 독립선언서가 배부되었다. 중앙학교 장기욱·선린상업학교 이규송·조선약학교 전동환·이세룡이 약 70매, 김백평이 약 200매를 받았다. 장기욱은 3월 1일 이춘학(李春鶴)에게 교부하고, 이규송은 파고다공원 에서 남정채·박인옥·김철환을 만나 남정채에게 약 20매를 봉래정, 박인옥에게 약간을 동 막, 김철환에게 약 60매를 남대문 안과 동막에 배포하도록 하였다. 김철환은 오후 2시쯤 마 포에서 쌀가게·이발소 및 통행인 등에게 배포하였다. 나머지는 이규송 자신이 조선상업은 행 부근에 배포하였다. ⑤ 일본과 중국 : 임규는 최남선의 권유로 독립선언서 등 초안을 보고 조선독립의견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