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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독립운동 관련 판결문 자료집 (3·1운동Ⅰ ) ② 기독교 : 기독교측에서는 이갑성·김창준·함태영·박희도 중심으로 배포하였다. 김성 국은 2월 28일 이갑성에게 약 100매를 받아 승동예배당에서 강기덕에게 교부하였다. 김진호 (金鎭浩)는 2월 28일 이필주의 요청을 받고 3월 1일 오후 2시경 러시아·미국·프랑스영사 관에 보낼 독립선언서 봉투를 오흥순(吳興順) 등 학생에게 교부하였다. 오흥순은 러시아영사 관으로 가서 통역을 통해 봉투를 사환에게 전달하였다. 김동혁(金東赫)은 오후 1시경 김진호 집에서 임창준(林昌俊)에게 6매를 받아 오후 2시경 남대문 5~6호 민가에 배포하였다. 함태영(咸泰英)은 2월 28일 이종일에게 1,200~1,300매를 받아 절반 정도를 평양기독교회 사환에게 교부하였고, 나머지는 김창준 집으로 보냈다. 김창준은 2월 28일 약 900매를 이종 일·함태영에게 받아 300매를 이계창(李桂昌), 600매를 이갑성에게 교부하였다. 이계창은 오전 9시 반경 중앙예배당에서 선천 목사 백시찬(白時瓚)에게 전달 의뢰와 여비 20원을 받 아 오전 10시 반경 출발하여 밤에 선천 신성학교 김지웅(金志雄)에게 전하였다. 김지웅은 양 전백 집 뒤 길가에서 백시찬에게 독립선언서를 전하고 “3월 1일 오후 1시 결행한다”고 말하 였다. 그는 3월 1일 학생에게 독립선언서 취지를 알리고 기 1개씩을 들고 시내에서 선두에 ‘조선독립단(朝鮮獨立團)’기를 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한편 의주에서는 3월 1일 오후 2시 30분 서교회당 공지에 7~800명이 모여 찬미가를 부르고 김병농(金炳穠 )의 기도 중 선천에 서 독립선언서 약 200매가 도착하여 유여대가 낭독한 후 강용상(康龍祥) 등이 군중에게 배 포하였다. 이갑성은 김창준에게 받은 600매 가운데 2월 28일 4, 5매를 이용설(李容卨), 3월 1일 400 매를 이굉상(李宏祥)에게 교부하였다. 이굉상은 3월 1일 오전 8시경 출발하여 대구 이만집 (李萬集)에게 200매를 교부하여 김태련(金泰練)이 3월 8일 서문 밖 시장에서 배포하였다. 밤 에 마산 임학찬(任學瓚) 집에서 200매를 교부하였다. 김용환(金容煥)은 3월 2일 배포를 맡겠 다는 뜻을 말하고 이형재(金炯宰)를 임학찬 집으로 보냈다. 이형재에게 30매를 받은 김용환 은 3월 3일 무학산 국장 요배식의 군중에게 20매를 배포하며 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김병수(金炳洙)는 2월 28일 이갑성에게 200매를 군산 박연세(朴連世·淵世)에게 전달 의 뢰를 받았다. 그는 3월 1일 박연세에게 200매를 전달하여 박연세·이두열 등은 3월 2~3일 에, 양기철(梁基哲)·고준상(高俊相) 등은 3월 5일에 군산에 배포하였다. 오화영(吳華英)은 2월 28일 김창준에게 독립선언서 약 100매를 받아 동생 오은영(吳殷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