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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독립운동 관련 판결문 자료집 (3·1운동Ⅰ ) 약속하였다. ④ 학생 참여 : 박희도·이갑성은 독립운동에 학생을 규합하여 실행을 맡기로 하고 동정 을 살폈다. 박희도는 1월 27일 연희전문학교 김원벽(金元璧)·보성법률상업전문학교 강기덕 (康基德)·경성의학전문학교 한위건(韓偉健)·김형기(金炯璣)·경성공업전문학교 주종의(朱 鍾宜)·경성전수학교 이공후(李公厚)를 관수동 대관원에 초청하고, 주익(朱翼)·윤화정(尹 和鼎)도 참석시켰다. 그는 독립의 기회가 왔으니 논의를 계속하여 결속할 필요가 있고, 독립 운동에 힘쓸 것을 권하였다. 그리고 조선독립운동을 할 좋은 시기인가 아닌가에 대해 협의가 있었다. 2월 초 신문에서 민족자결주의 제창으로 비록 약소국도 활동할 수 있는 상황이며 일본 유 학생의 활동 개시를 알고 이에 국내 학생도 활동해야한다고 생각하여 뜻있는 학생 간에 서로 교류가 있었다. 강기덕·한위건·김원벽은 모임을 여러 번 갖고 각자가 중등 정도 학생 대표 자를 선정하여 결속시켰다. 김원벽은 경신학교 강우열(康禹烈)·강창준(姜昌俊)과 경성고등 보통학교 박쾌인(朴快仁) 등을 설득하였다. 강기덕은 서북친목회 회원임을 활용하거나 기타 방법으로 규합하였다. 경성고등보통학교 김백평(金栢枰)·박노영(朴老英), 중앙학교 장기욱 (張基郁), 선린상업학교 이규송(李奎宋), 보성고등보통학교 장채극(張彩極)·전옥결(全玉 玦 ) 등을 박희용(朴熙容) 집으로 소집하였다. ‘우리 조선도 국제연맹에서 주창되는 민족자결주의 에 따라 독립할 수 있을 것이며, 지식 계급자 사이에 그 기획이 진행 중이다…지금부터 각각 자기 학교 학생에게 대하여 독립사상을 고취하여 이에 대비함이 긴요한다’고 설명하였다. 그 리고 동창들에게 개인적 또는 집회 방법으로 기회 있을 때마다 조선독립운동에 분기하여 참 가시키도록 하였다. 이갑성은 2월 12일과 14일에 음악회를 빌려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 구내 자택에 김원벽·한위건·김형기·윤자영(尹滋瑛)·김문진(金文珍)·배동석(裵東奭) 등 을 초청하여 해외독립운동 정세와 일본 유학생의 독립운동 등을 알렸다. 강기덕은 2월 16일 종로청년회관에서 박희도에게 천도교·예수교도 공동으로 민족자결주의에 의한 조선인의 독립 희망을 각국에 발표할 독립운동계획을 들었다. 그는 이를 2월 17일 한창환에게 전하고, 한창환은 한위건을 강기덕에게 소개하였다. 이로써 전문학교 학생의 본격적 3·1운동 참여 논의가 시작되었다. 박희도가 천도교측과 독립운동을 진행시키며 강기덕·김원벽 등과 회합하여 그 진행 사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