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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 경기도 지역 3·1운동의 전개 95 이 하얗게 되었다. 이들은 정오를 지나 산에서 내려와 오후 2시경 면사무소 앞 에서 만세시위를 벌였는데, 그 수는 300여 명이었다. 시위대는 면장의 시위 참 여를 요구하고, 일부 시위대는 면사무소 판자문과 기와 일부를 부수었다. 시위 대가 교하주재소를 향하던 도중에 출동한 주재소 헌병들이 발포하자 해산한 후, 밤이 되자 다시 봉화를 올리고 만세시위를 계속하였다. 이날 광탄면에서도 발 랑리 주민들을 중심으로 수백 명이 집결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며 신산리에 있는 면사무소로 행진했다. 3월 27일 염규호·김수덕·김창실 등이 700여 명의 동리민을 모아 면사무 소로 행진했다. 이들은 면사무소 면서기들에게 업무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며 유 리창을 부수었다. 시위대는 1,500여 명으로 불어났다. 이들은 교하헌병주재소 로 행진하여 갔다. 교하주재소 헌병들이 파주헌병분소에서 병력지원을 받아 시 위대를 향하여 발포했다. 당하리 최홍주崔鴻柱가 사망하자 시위대는 해산했다. 3월 28일 광탄면 신산리 심상각과 김웅권金雄權 ·권중환權重煥·심의봉沈宜 鳳 등 19인이 주도하여 대대적인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들은 광탄면에 본부 를 두고 고양군민 일부까지 참여시키는 주도면밀한 군중동원계획과 시위계획 을 수립했다. 28일 집결한 2,000여 명의 군중들은 신산리 광탄면사무소 앞에 집 결하여 조리면 봉일천 시장으로 행진했다. 봉일천 장에 모인 1,000여 명과 합세 하여 3,000여 명으로 불어난 시위대는 조리면사무소 건물과 집기 일부를 파손 하고 면장과 면서기를 붙들어 봉일천 시장까지 앞장세웠다. 이들은 봉일천 헌병 주재소에 대해서도 공격하였다. 이에 봉일천주재소 헌병들이 시위대에 발포하 여 광탄면의 박원선 등 6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수십 명이 부상당하였으며 많 은 사람들이 체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