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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 경기도 지역 3·1운동의 전개 93 었다. 또한 장남면에서 330명의 시위가 일어나 일제의 발포로 1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당했다. 4월 1일 대남면 시위는 장좌리의 함정원咸貞元·이재삼李在 三 등이 주도했다. 이들은 주민의 조직적인 참여를 위하여 4월 1일 “이날 밤 동 민 각자는 작은 구한국 국기 1류, 5명마다 봉화 1개, 각 동마다 큰 구한국 국기 1 류를 가지고 위천리 용산동에 집합하라”는 내용의 문서를 만들어 각 동장들에게 전달하였다. 이에 각 동장들은 이 문서를 회람시키고 시위에 필요한 준비물을 갖 추었다. 이날 밤이 되자 군중 100여 명이 시위장소인 용산동 대남면사무소와 사 립 명성학교明成學校에 모였다. 시위대는 교정을 돌면서 독립만세시위를 하였다. 4월 1일 강상면江上面 구화리九化里에서도 대규모 군중이 만세를 부르며 시 위운동에 적극 나섰다. 특히 이날 시위는 면사무소를 습격하여 방화하가도 했다. 이에 일본 헌병들은 강압적으로 제지하여 시위 군중을 해산시켰다. 4월 3일에도 대남면민의 시위 열기는 식지 않아 4월 1일의 시위에 이어 이 날 대남면민 1,000여 명이 앞서 만세시위를 벌인 대남면사무소와 학교에 운집 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4월 3일에는 장도면 항동리의 구시장 터에서 오전 10시부터 정오에 이르기까지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는데, 마침 고랑포高 浪浦 장날을 맞아 장꾼 100여 명이 합세하여 시위를 벌였다. 파주 박은식의 기록에는 파주군의 집회횟수와 인원이 각각 7회 5천명이다. 이지원의 집계에 따르면, 3월 26일(4회) , 27일(2회), 28일, 30일(2회) 등 모두 9회이다. 파주에서는 와석면·임진면·주내면·청석면·광탄면·조리면·천현면 에서 3·1운동이 일어났다. 3월 10일 와석면 교하리에 있는 교하공립보통학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