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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이 부상을 입었다. 모가면 서경 리에서는 권중효와 그의 자형 한 석동韓石東이 주도하였다. 권중 효는 3월 31일 준비모임에 참여 하였으며, 한석동·남상찬南相贊 등과 함께 자신의 집에서 만세시 위를 계획하였다. 이들의 주도로 마을 주민 150여 명이 모였다. 시 위군중은 응봉산 鷹峰山에 올라가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시위하였다. 백사면 시위는 김순철 목사가 3월 31일 신둔면 수하리 모임에 참여하고 돌 아와 각 동리를 돌며 격문을 돌려 시위참여를 독려하였다. 이에 힘입어 송말리 주민들은 야간에 산에 올라 봉화를 올리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전개하였 다. 대월면 군양리 주민들과 호법면민들도 야간에 산에 올라 봉화시위를 하였다. 6개 면의 산상 봉화시위는 현장에서 일본 군인들에 의해 해산되기도 하 였으나, 산에서 내려와 당초 계획대로 읍내면으로 모여 들었는데, 이렇게 모인 군중이 300여 명이 되었다. 이천공립보통학교 학생인 최종석崔鍾奭·강문형姜文 馨 ·서석운徐錫雲 등이 앞에 나서 시위대를 이끌었으며, 상인들은 장날임에도 전 상가가 철시하여 시위에 동참하였다. 일본군의 무차별 발포로 7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음에도 시위는 다음날 오전 2시까지 계속되었다. 4월 3일 부발면 夫鉢面 등 이천군 각 면에서 산발적으로 독립만세 시위가 일 어났다. 4월 4일에는 청미면淸渼面 주민들이 야간에 백족산 정상에 올라 봉화시 위를 전개하였다. 그러자 인근 여러 면의 주민들이 각기 100여 명의 시위대를 구 서기창·이상혁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