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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1919년 3·1운동이 서울을 중심으로 전개되자 경기도지역에서도 역시 도민들에 의하여 만세운동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었다. 특히 경기도지역은 한국의 중심부 이며 남북으로 철로와 도로가 관통하는 요충지로서 서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바로 전할 수 있어 서울에서 전개되고 있던 독립운동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 었다. 뿐만 아니라 경기도 지역의 많은 학생들이 서울로 통학하고 있었으므로 서 울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독립운동과 호흡을 같이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 로 경기도 지역은 타 도에 비하여 독립운동이 활발하였으며, 이러한 현상은 3·1 운동 때에 경기도민들이 보여준 적극적인 만세운동에서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3·1운동 시 경기도 지역 21개 부·군 모두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으며, 3·4월 두 달 동안 225회의 시위가 전개되었다. 참가인원도 연 15만 명에 달하여 전국 에서 가장 많은 만세운동과 시위 참여 인원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도지역의 3·1운동에 대한 학문적인 연구는 별반 이 루어지지 못하였다. 필자가 본고를 작성하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특히 수원군의 송산·우정·장안 지역과 안성지역은 전국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한 만세운동을 전개했음에도 연구의 미비 등으로 인하여 그 역 사적 위상을 올바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점은 대단히 안타까운 실정이다. 수원 군의 경우 다수의 민중이 참여하여 일본 순사 2명을 처단한 공격적인 만세운동 임에도 제암리 학살사건 등에 묻혀 그 실체가 거의 밝혀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 서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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