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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 경기도 지역 3·1운동의 전개 81 구하였다. 3월 29일 강상면 송학리의 신석영辛錫永 은 갈산면 양근리 장에 가려고 교평 리 도선장에 나갔다. 도선장에는 1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신석영은 꽂 혀 있던 태극기를 뽑아 흔들며 독립만세를 선창했다. 이에 모여 섰던 100여 명의 사람들이 호응하여 나루터가 시위장으로 변하였다. 3월 30일 용문면 마룡리의 조영호 趙瑛鎬는 오촌리 김윤구金崙求와 신순근辛 淳根 등과 함께 용문면 광탄리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군중들과 함께 조선독립만 세를 외쳤다. 조영호는 군중들 앞에서 큰 소리로 연설하며 군중들을 고무했다. 3월 31일 강하면에서는 면사무소 앞에서 300여 명의 동리민이 모여 태극기 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날의 시위는 68세 된 노인 최대현崔大鉉 이 주도 하였다. 최대현은 군대 해산 후 의병을 일으켜 700여 명의 부하를 이끌고 일본군 과 교전한 경험이 있었다. 그는 윤기영·이보원·신우균 등과 함께 3월 31일 강 하면 사무소 앞에서 30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를 불렀다. 4월 1일 양서면에서는 2,000명의 군중이 모여 만세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 에서는 강하면 시위를 주도했던 최대현이 다시 참여했다. 시위군중은 헌병주재 소 앞으로 나아가 조선독립만세를 연호하면서 독립의 의사를 표명하였다. 이튿 날인 4월 2일 여운긍呂運兢·여광현呂光鉉등이 주도하여 1,000여 명의 시위군 중이 양서면사무소 앞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4월 3일에는 고읍면에서 4,000명이 참가한 대규모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 날의 시위는 4월 2일 최대현 등이 서울에서 온 학생 2명과 동리민들과 함께 의 논하여 4월 3일에 만세시위를 결행하기로 한 데 따른 것이었다. 4월 3일이 되자 강상·강하·양서·고읍 4면의 주민 약 4천 명이 고읍면에 모였다. 최대현은 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