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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리 아래에서 양동면 쌍학리의 정경시鄭慶時 , 청운면 갈운리의 민주혁閔周赫 등을 만나 용두리 장터 만세시위를 계획했다. 신재원이 광목을 내놓아 “조선독립기朝 鮮獨立旗 ”이라고 쓴 깃발 3개를 만들고 시장 안에서 신재원과 김종학이 독립만세 를 외치며 시위를 선도했다. 이에 200여 명의 장꾼들이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부 르며 시가행진에 들어갔다. 일본 헌병이 출동하여 주도자들을 체포함으로써 시 위대가 해산하였다. 3월 24일에는 갈산면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3월 24일은 갈산면 양근리 장날이었다. 이 시위는 연희전문학교 서기인 이진규李盡珪가 독립선언서 수십 매 와 대한독립회 大韓獨立會 명의로 된 격문 수십 매를 가지고 3월 23일 서울을 출발 하여 양근에 도착했다. 이진규는 장터에 모인 1,000여 군중들에게 “조선민족은 이 기회를 타서 일본 제국의 굴레를 벗어나 독립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취지의 연설을 하고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배포하면서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군 중들은 이진규와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장 안을 행진하였다. 오후 2시경 양평헌병분견소 헌병이 출동하여 이진규와 시위를 앞장서 이 끌었던 곽영준을 구금하자 군중들은 헌병분견소 앞으로 모여들어 체포된 인사 를 석방하라고 요구하였다. 또 수백 명의 군중은 갈산면사무소·양평군청·양 평우편소와 박희영의 집에 쳐들어갔다. 이들은 군청과 면사무소의 서류, 장부 일 부를 파손하고 면장 김찬제를 사무소 밖으로 끌어 내 구타하였으며, 우편소 유 리창을 파괴하고 군수와 면장이 숨은 것을 찾아내고자 박희영의 집을 뒤졌다. 이날 갈산면 공흥리 사는 이용준李容俊도 이와 별도로 400여 명의 군중을 이끌고 양근리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갈산면 사무소로 쳐들어가 면장 김 찬제, 면서기 서병일 徐丙一을 바깥으로 끌어내어 같이 독립만세를 부를 것을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