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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최호천은 가리대리에서 주재소로 가는 도중 “곤봉 같은 것이나 돌을 가지 고 가자”고 말하였다. 또 주재소 앞에서 합세를 할 때 최호천이 “만일 주재소 직 원이 발포하거나 폭행을 하더라도 결코 퇴각하지 말라. 휴대한 돌이나 곤봉으로 대항하라”고 하면서 지휘하였다. 이에 동리민들은 일본 순사가 발포할 것에 대 비하여 돌과 몽둥이 등을 준비하여 주재소로 갔다. 주재소 앞에 이르러 주민들 은 이정석의 석방을 요구하였다. 주재소 안의 순사들은 주재소 안에 소등을 하 고 숨을 죽이며 반응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최호천은 주재소 안에 순사들 이 없는 것으로 알고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이끌고 주재소 순사보 최우창과 김정 환, 금택성웅 金澤成雄의 집으로 달려갔으며 다른 무리는 주재소 뒷벽 일부를 무 너뜨리고 게시판을 부수었다. 당시 최우창은 마을 음식점에서 하숙하고 있었다. 음식점 주인을 불러내 등 불을 켜고 그 집안을 수색하였으나 순사보는 집에 없었다. 최호천은 윤의병과 함께 다른 순사보인 김정환 집으로 달려갔으나 김정환도 집에 없었다. 다시 최 호천은 순사보 금택성웅의 집으로 달려가 집을 포위하고 수색하였으나 그 또한 집에 없었다. 다시 주재소로 되돌아오자 일본인 순사가 나왔다. 최호천·윤의병 두 사람은 그 순사와 담판을 시작하여 순사에게 구금된 이정석을 놓아 주도록 요 구했다. 기세에 눌린 순사는 놓아 돌려주도록 조처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종 운은 “계약서를 제출하라”고 강박하였다. 순사는, “틀림없이 방면하도록 하겠다” 고 말하므로 만세를 외치면서 해산하였다. 3월 29일에는 과천면 막계리와 주암리 주민들이 각기 자신의 마을에서 만 세시위를 벌였다. 30일에는 하리의 이복래李復來가 동리민들에게 통문을 돌려 저 녁 8시 남태령에서 횃불시위를 벌였다. 이때 모인 50여 명의 주민들은 남태령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