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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여 아침부터 상인들이 철시하였다. 3월 27일에는 전 상점의 약 40%인 60호가 문 을 닫았는데, 철시는 31일까지 이어졌다. 3월 25일 오산에서 보통학교 졸업자와 천도교도들이 금융조합과 일본인·중국인 가옥을 파괴했다. 3월 29일 수원 면내에서는 기생들의 시위가 있었다. 수원 기생조합 기생들 이 자혜의원으로 검진을 받으러 가다가 경찰서 앞에 이르러 김향화金香花가 선 두에 서서 만세를 부르자 일행이 일제히 따라 만세를 불렀다. 이들은 병원으로 가서 다시 독립만세를 불렀고, 병원에서 이들의 검진을 거부하자 병원을 나와 다시 경찰서 앞에서 만세를 불렀다. 이날 또한 300명의 학생·기독교인·보통 민을 중심으로 한 격렬한 시위가 일어나 18명이 체포되고 관공서와 민가 6채가 파괴되었다. 3월 29일 오산 장날 오후 4시경 우시장에서 시위가 시작되었다. 성호면 세 교리 안낙순과 오산리의 유진홍이 주도했다. 이들은 면사무소와 경찰관 주재소 앞에서 만세를 외쳤다. 군중은 7~8백명으로 불어났다. 면사무소, 주재소, 우편소 를 파괴하고, 인근에 사는 일본인들의 집도 파괴했다. 3월 29일 안룡면에서는 각 동에서 일제히 북을 치고 등불을 들고 만세 시위를 벌였다. 같은 날 양감면에서 수백명이 진위군 청북면 율북리의 주민들과 합세하여 산에서 봉화를 올리고 만 세를 불렀다. 또 이날 태장면에서도 등불과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며 산마 다 횃불을 올리고 30일 새벽에 해산했다. 3월 31일 의왕면 고천리에서 천도교도·기독교도·농민 8백여 명이 시위 를 벌였다. 이들은 지지대 고개에서 횃불을 높이 들고 만세를 부르며 주재소와 면사무소를 습격했다. 4월 1일 반월면 반월장에서 천도교도·기독교도·농민 6백여 명이 평화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