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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 경기도 지역 3·1운동의 전개 61 려 했으나 군대가 저지했다고 한다. 4월 5일 월곶면 군하리에서 이화학 당 재학생 이경덕이 성태영·박용희·조 남윤·윤종근·최복석 등과 함께 만세시 위를 벌였다. 부천 부천군은 1914년 4월 신설되었는데, 종 래의 부평군 일원을 비롯하여 인천부 구읍면·서면·남촌면·오동면·신현 면·전반면·황등천면·주안면·영종면·용유면·덕적면, 그리고 다소면 중 인천부에 속하지 않은 지역, 강화군 신도·시도·모도·장봉도, 남양군 영흥 면·대부면을 관할 구역으로 했다. 해방 이후 서울과 인천의 확장에 따라 서울 과 인천에 편입되었고, 대부면(대부도)은 현재의 안산시, 소래면은 현재의 시흥 시에 속하게 되었다. 박은식은 부평의 집회횟수는 6회, 집회 인원은 950명이라고 했다. 3) 이지원 은 부천군의 시위횟수는 모두 11회로, 이를 다시 날짜별로 구분하여 3월 24일(3 회) , 25일부터 27일까지 각 1회, 28일 (2회) , 4월 2일, 6일, 7일 각 1회로 집계했다. 3월 24일 계남면에서는 다수의 군중이 면사무소를 습격하여 집기를 부수 고, 서류를 소각하였다. 이 사실은 경기도장관이 정무총감에게 보고한 문건에 기 록되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3월 24일 시위 군중이 계남면사무소를 습격하여 유리창과 판자벽 등을 파괴하고, 민적부·조선인 거주 등록부·과세 호수 대장 3) 1914년에 조선총독부는 부평군을 폐지하고, 신설 부천군에 통합시켰는데, 박은식은 그 조치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 도에서 부평으로 표시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조남윤 판결문(국가기록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