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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만세를 불렀다. 3월 23일 양동면 양화리에 서 주민 백여 명이 만세 시위를 벌이고, 24일에도 면내에서 농민 백여 명이 만세를 불렀다. 3월 24 일 고촌면 신곡리에서 학생과 청 년들이 주도하여 주민 50여명이 뒷산에서 만세를 불렀다. 다음 날에도 다시 동네 사람들 50여 명이 모여 독립만세를 부르며 동네를 돌았다. 3월 26일 군내면 감정리에서 주민 수십명이 만세 시위를 벌였다. 3월 28일 조남윤 趙南潤은 ‘29일 오전 11시 통진 면내에 모여 조선독립만세 를 부른다’는 통문 7통을 작성하여 동리에 돌렸다. 이에 다음날(29일) 오전 11시 통진 면내에 400여 명의 주민이 모였다. 시위대는 향교와 면사무소 앞에서 독립 만세를 부른 후 일본 경찰이 압박을 가해 오자 이날 밤 수십 명과 함께 인근의 함반산에 올라가 횃불을 올리며 조선독립만세를 불렀다. 갈산리에서도 3월 29 일 정오에 갈산리와 조강리 등 여러 마을에서 주민 수백 명이 갈산리에 모여 최 복석 崔復錫이 앞장 선 가운데 통진면내로 들어가 향교·보통학교·면사무소 앞 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벌였다. 경기도장관이 정무총감에게 보낸 보고서에 따르면, 3월 29일 오후 9시 10 분 양촌면 양곡리 오라리시장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나 경관과 군대가 진화하였 는데, 이 불길이 높아짐과 동시에 사방의 산 위에 모여 있던 군중이 일제히 만세 를 부르고, 동시에 주재소 뒤편 수풀 속에서 약 50명의 군중이 주재소를 습격하 조남윤 사진(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