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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 경기도 지역 3·1운동의 전개 57 3월 27일 아침 동부면 김교영金敎永 은 망월리望月里 구장이었는데, 동리 김 용문 金用文을 시켜 동민을 소집케 하였다. 그리하여 모인 동리 사람 9명을 인솔 하고 면사무소까지 만세시위를 하였다. 같은 날 서부면西部面 감일리甘一里에 사 는 구희서 具羲書 는 자기 동리 주민 40여 명과 함께 서부면 사무소 앞에서 만세를 부르고 다시 상일리上一里 헌병주재소 앞까지 시위행진을 하며 대한 독립만세를 불렀다. 이날 시위대는 천명에 달하였는데, 서부면사무소와 상일리 헌병주재소 에 몰려들어 헌병을 포위하고 투석을 하였다. 일제는 이에 발포하여 사망 1명, 부상 2명의 피해를 낳았다. 또 같은 날인 27일 오전 1시부터 광주 오포면, 용인군 일대에 봉화를 들고 여기저기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오포면 추자리楸自里 사는 정제신 鄭濟莘(이명 鄭 濟華) 은 오포면 고산리高山里에서 동리 사람 40여 명과 함께 만세를 부르고 횃불 을 높이 들어 한국이 독립되었다고 기뻐하였다. 3월 28일 오포면 정제신 鄭濟莘은 동민 40여 명을 인솔하고 오포면 사무소 앞에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그리고 계속하여 동민을 인솔하고 광주군청에 가서 만세를 불렀다. 그런데 이때 뒷산에서 만세를 부른 일을 『독립운동사』 제2권(3·1 운동사 상)(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에서는 3월 27일 새벽 일로 기록하고 있으나, 『판결문』에서는 3월 28일의 일이라고 했다. 3월 28일 밤중에 오포면 문형리文衡里 에서는 김인택金仁澤과 임무경 林武京 등 이 선두에 나서 동리 사람 약 30여 명과 함께 뒷동산에 올라가 횃불을 올리며 독 립만세를 불렀다. 일단 집으로 돌아와 쉰 다음 다시 그날 오후 2시경에 동민을 인솔하고 경안면 경안리 慶安里 광주군청에 모였는데 광주군 각면에서 모인 군중 이 1천 명 이상이 되었다. 군중들은 독립만세를 부르며 경안리를 돌아다니며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