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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 경기도 지역 3·1운동의 전개 53 시위를 벌였다. 이재록은 여러 문건들을 만들어 동리 사람들에게 회람을 시키 며 시위를 준비했다. 같은 날인 3월 26일 중면中面에서는 창내리 앞산에서 주민 들이 만세시위를 벌였다. 경기도장관이 정무총감에게 보낸 보고에 따르면, 3월 26일부터 송도면에 서는 상점을 폐쇄하기도 하였고 28일에 이르기까지 음식점·수육점獸肉店 및 식 료품점을 제한 외에 거의 전부가 폐점하여 상거래가 중단되었다. 이에 앞서 송 도면 동본정에 거주하는 최두순·김형렬·김세중·이형기 등은 상인들도 독립 운동에 동참하게 하고자 “개성 상민 商民 은 본서 도착과 동시에 폐점하라”는 권고 문 6통을 작성하여 개성의 대상 大商 들 상점에 투입했다. 이에 개성의 상점들은 3 월 27일부터 폐점하고 철시에 들어갔다. 일본인 상점들이 문을 열어도 개성 사 람들은 일본인 상점을 이용하지 않았다. 이에 일본인 상점들도 하는 수 없이 문 을 닫지 않을 수 없었다. 3월 28일에는 동면 東面 대조족리에서 동리민洞里民들이 오관산에 올라 횃불 을 들고 독립만세를 높이 부른 데 이어 29일, 30일 연속 산상 횃불시위를 벌였다. 이민 里民들은 동면 사무소 앞으로 나아가 면장에게 독립만세를 부를 것을 요구 하고 일장기를 불태웠다. 이들은 3월 31일 밤에도 횃불시위를 벌였는데, 인근 백 전리, 진봉면 탄동리 주민들도 참여하였다. 광덕면에서도 3월 31일 사분리·황 강리·고천리·중련리 등지에서 수백명이 만세시위를 벌였다. 3월 29일 상도면에서는 300여 명의 시위군중이 상도리를 출발하여 대성 면 풍덕리로 가서 헌병 분견소 건물을 애워싸고 시위를 벌이며 전선을 끊고 전 신주를 넘어뜨리고자 하다 일제의 총격을 받았다. 3월 31일부터 중면 대룡리에 서는 4월 2일까지 뒷산에 태극기를 세워놓고 밤마다 봉화를 올리며 시위가 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