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page

52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일간, 다시 4월 5일 3회, 6일 1회 등이다. 아래에서는 3월 3일과 4일, 26일, 28일 부터 31일, 4월 1일부터 6일까지의 시위를 소개한다. 이를 날짜별로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3월 3일에는 호수 돈여학교 학생들이 독립가와 찬송가를 부르며 시위가 시작하였다. 여기에 송도 고등보통학교 학생들과 일반 군중이 합세하여 천여 명에 달하는 인원이 참여하 였다. 그 외에도 천오백여 명의 군중들이 남산정南山町의 이형순李亨淳의 주도로 시위를 벌였다. 같은 날 오후 5시 반경부터는 10대의 소학교 생도를 비롯한 소 년 시위대 수백명이 선죽교에서 만세를 부르고 시가를 행진했다. 그 뒤를 뒤따 른 시위대는 2천여 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태극기를 휘두르며 만세를 부르고, 다 른 한편으로는 일장기를 불태우고 파출소에 진입하여 일본 경찰과 투석전을 전 개하였다. 시위는 해가 저물도록 그치지 않고 밤 12시까지 지속되었다. 이것이 개성의 시위 첫날 광경이다. 이와 같은 동시 다발적 시위는 준비가 있었기 때문이데, 그것은 다음과 같 다. 3월 1일 남감리교 여전도사인 어윤희 魚允姬·신관빈申寬彬등은 송도면의 유 치원 교사 권애라 權愛羅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아 송도면의 만월정 滿月町과 북본정 北本町·동본정東本町일대에 독립선언서 2,000장을 배포했다. 이로 인해 이 지역에서는 서울의 운동 소식이 즉각 알려졌고, 학생들을 중심으로 일찍부터 만세운동의 분위기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이어 3월 4일에도 송도고등보통학교와 호수돈여학교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위를 벌였는데, 오후에는 군중 약 600명이 합세하여 시가행진과 투석전을 전 개하며 경찰의 저지선을 돌파하기도 하였다. 밤에는 2,000여 명으로 불어났다. 그러다가 3월 26일 진봉면에서는 지금리의 이재록李在祿 이 주도하여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