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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하는 자인 바, 동 군민이 목하의 독립운동에 냉담하여 경성(서울) 지방 사람들에 게 개·돼지로 취급되는 것을 분개하여 군내의 각지에 경고, 대거하여 조선독립 시위운동을 함으로써 곁들여 여주 사람의 면목을 세우고자 공모하여 대정 8년 4 월 1일 피고 이원기는 그가 가진 증 제4호의 독립선언서를 참고로 하여 ‘오는 4 월 5일 여주 읍내의 장날을 기하여 동 읍내 다락문 앞에서 독립운동을 시작할 터 이니, 그 곳으로 모이라’는 취지의 문서를 기초하고, 그 밖의 전기한 피고는 이원 문 집에서 위의 기초문서에 따라 42매의 경고문을 손으로 써서 이를 이 날쯤 각 곳에 배부하였으며, 피고 강영조 465) 및 김학수 466) 는 위의 독립운동 취지에 공명, 피고 강영조는 동월 2일 이기원 집에서 동인 및 이원문과 같이 시위운동에 사용 할 한국 태극기를 만들고, 피고 김학수는 동월 3일 북내면 장암리 구장 원도기元 道基 집에서 이원기 및 원필희와 함께 증 제1호의 태극기를 만들어 각각 시위운 동 준비에 힘쓰고 있던 차 피고 최영무 467) ·강만길 468) ·최명용明用469) ·강두영 470) (번역본에는 강영두라고 되어 있음-인용자) 는 이웃 동리인 현암리峴岩里 이민에게 재촉 을 받고서 이날 독립시위운동을 결의하여 장암리·덕산리 德山里·외룡리를 넘 나들어 이민들의 출동을 요구하고, 피고 이기원 및 김학수도 예정기일을 변경하 여 3일에 거사하기로 경정하고 최영무 등을 따라 각 이민들을 선동하였기 때문 에 이 날 북내면 당우리 堂隅里 공북拱北학교 마당에 모인 자가 약 800명의 다수에 이르렀다. 이리하여 전기한 피고들 (조경호는 제외)은 위의 군중과 같이 조선독립만 세를 절규 하면서 여주 읍내를 향하여 출발하였는데, 도중 피고 최영무는 태극기 465) 주소·본적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외룡리 289번지, 강영조姜永祚 당 26세 466) 주소·본적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신남리 新南里 246번지, 북내면 면서기 견습 김학수金學洙 당 20세 467) 주소·본적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北內面 오금리五今里 47번지, 날품팔이 최영무崔永武 당 35세 468) 주소·본적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어금리 114번지, 농업 강만길 姜萬吉 당 30세 469) 주소·본적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오금리 113번지, 농업 [일명 一名 : 명룡明龍·석기 石基] 최명용崔明用 당 27세 470) 주소·본적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오금리 114번지, 농업 강두영 姜斗永 당 21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