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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한 화수리항쟁은 모든 종교세력이 일치단결하여 이룬 항쟁이라는 특성 또한 갖 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씨는 석포리, 주곡리 등의 유교, 수촌리의 천도교와 기독 교, 장안리의 일부 천주교 세력 등 다양한 종교 세력이 연합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며, 당시 만세운동에 참여한 주민들은 자신의 신앙체계보다도 항일이라는 측면에 보다 주안점을 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고 강조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종교적인 성향으로 분류하여 3·1운동을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씨는 만세운동 참여 배경이 화수리 주재소의 탄압, 면사무소의 탄압 등 현실적인 문제와 직결되어 있고, 특별히는 이 지역이 해안지역에 위치 하고 있어 일본인들에 의하여 간사지 매립에 인력이 동원되는 경우가 많아, 이 점이 결국 주민들에게 큰 불만으로 작용하였으며, 석포리, 수촌리 등의 사람들 이 주로 참여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보고 있다. 또한 박환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불탄 화수리의 모습, 화수리 주재소 평면 도, 화수리 주재소 위치도, 우정면사무소, 장안면사무소 도면, 우정, 장안지역 항 쟁도, 송산 사강지역 만세운동도 등도 발굴하여 화성지역의 만세운동을 보다 생 생히 복원하는 데 기여하였다. 최근에는 이용창 「재판 관련 기록으로 본 화성 장안·우정면 3·1만세운동」 『한국독립운동사연구』 62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18이 발표되 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송산, 서신지역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화성지역의 3·1운동의 경우 우정면, 장안면, 향남면 제암 리 등이 부각된 나머지 화성시에서 최초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고, 시발점 역할 을 하였던 송산면에 대하여 주의를 전혀 기울이지 못하는 우를 범하였다. 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