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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제암리 제암리 감리교회터 소재지: 제암리 종류: 항일운동의 근거지 내용: 3 ·1운동 당시 제암교회는 미감리회 한국연회 수원지방회 남양구역 소속이었다. 경기도 수원군(현 화성군) 향남면에 위치한 제암리는 속칭 ‘두렁바위’로 불리는 조선 후기 전형적인 씨족 중심의 농촌 마을이었다. 3·1운동 당시 전체 33가구 가운데 2가구를 제외하고 순흥 안씨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었으며, 주민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였다. 제암교회는 이 마을의 안종후가 처음 복음을 받아들인 후 1905년 8월 5일 자기 집 사랑방에서 예배를 드린 것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암리의 토착 세력인 안씨 집안에서 복음을 처음 받아들여 다른 성씨 집안에도 전파된 것으로 보인다. 그 외에 한말 ‘구한국 부대’ 군인으로 있다가 1907년 군대 해산 때 충남 지역 항일 의병운동에 참가하여 부상을 입은 적이 있었던 홍원식도 1914년 인근 청북면 판교리에서 이곳 제암리로 옮겨 온 후, 제암교회 권사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는 제암리에서 ‘서재’를 세우고 계몽 교육을 실시하면서 제암리 교회 지도자 안종후, 고주리 천도교 지도자 김성렬 등과 ‘구국동지회’라는 비밀 조직을 만들어 지속적인 항일운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이처럼 제암리교회는 안종후·홍원식 권사와 김정헌, 안진순 속장 등을 중심한 강력한 지도세력을 구축하였고, 교회 외에 강습소까지 설립하여 부녀자를 대상으로 한글 교육까지 실시하였다. 제암 (두렁바위)교회는 1911년경 초가 예배당을 마련하였으며, 1912년에는 인근 해창교회를 흡수할 정도로 발전하였다. 제암리삼일독립운동기념비 소재지: 제암리기념관 입구 도로변 종류: 기념비 내용: 1946년 4월에 건립된 비석으로 제암리학설에 대한 최초의 기념비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제암리희생자 건립위원회 명의로 제작되었으며, 시는 박세영이 짓고, 이주홍이 글을 썼다. 비문에 적혀 있는 추도시는 다음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