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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 경기도 지역 3·1운동의 전개 229 업, 김흥복 등 육인을 체포하여 결박하여 놓고 짚단과 나무로 덮어놓고서 석유 를 뿌리고 또 생화장을 하였다. 그리고 이병헌은 제암리사건이 일어난 지 7년이 지난 1926년 11월에 발행 된 『천도교회월보』에 실린 「수원군종리원연혁」에서, “동년(1919년:필자) 사월 십 오일에 본구 관내 향남면 제암리 전교사 안종환 외 김흥렬, 김기훈, 김기영, 안경 순, 김성렬, 홍순진, 안종린, 김기세, 안응순, 안상용, 안정옥, 안종형, 안종화, 김 세열, 안자순, 안호순 제씨는 그곳 즉 야소교당에서 무고히 교의 혐의로 소살을 당하고 곳곳마다 심한 고초에 잇섯다.” 라고 하여 김흥렬·김성렬·김세열 등 김씨 3인이 고주리에서 희생된 천도교인임을 확인하고 있다. 구체적인 상황 설명은 김선진, 『일제의 학살만행을 고발한다』 중 『고주리참 살사건」에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제암리에서 만행을 저지른 일병들은 조희창을 선두로 6명의 수비대와 함 께 불과 10분거리 밖에 안되는 이웃마을 고주리로 갔다. 그들은 전 동리를 완 전 포위하고 미처 피신하지 않았 던 김흥열·김성열·김세열· 김주업·김주남·김흥복 등 6명 을 포박을 지어 집 뒤 언덕으로 끌고 올라가 군도로 김흥열을 필 두로 차례차례 목을 베고 난도질 을 하여 참혹하게 죽였다. 수비 파괴된 제암리 교회(독립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