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page

2 부 경기도 지역 3·1운동의 전개 197 금어리가 나온다. 포곡면의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권종목은 한학자였으며, 32세 까지 한문을 공부했다고 한다. 또한 잠업지도도 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그는 삼 계리에 1만 3천평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살고 있던 집은 삼계 리 147번지였으며, 42) 현재에는 폐허화되어 있다. 삼계리에는 현재 권종목의 만 세운동을 기리는 비석이 마을 뒤 산 입구에 서 있어 당시 만세운동의 자취를 증 언해 주고 있다. 포곡면 금어리는 홍씨마을은 아니었다. 현재 이곳에는 과거 홍종욱, 홍종엽 형제가 살던 580번지는 580-1번지로 변하였으며, 이인봉이 살던 581번지는 현 재에도 그대로 581번지이다. 현재에는 조동환씨가 거주하고 있다. 홍종엽은 구 장을 역임하였으며, 집도 사랑채, 안채 등이 있는 큰 규모였다. 농토는 몇 천평 이나 된 큰 부자였다. 이인봉의 집터도 홍종엽과 홍종욱의 집 바로 근처이다. 43) 내사면 남곡리 3월 29일 용인군 내사면 남곡리의 만세운동은 이 지역 112번지에 거주하는 한영 규 (당 37세)와 72번지에 거주하는 김운식 44) 등 천주교 신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이들은 바로 옆집에 거주하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던 것이다. 한영규는 1882년 내사면 남곡리 112번지에서 출생하여 양지항교에서 한문을 수학하였고, 농사를 지었다. 그는 세례명은 베드로로 이 지역의 구장으로 활동하였으며, 특히 강직 한 성품을 가진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조상은 화성 양감면 큰말에 살고 있었으나 군란을 피하여 선친때부터 배매실로 이주하였다. 42) 권영철과의 면담에서 청취 43) 포곡면 금어리 어매실 답사에는 심준기(포곡면 금어리 582-2, 1935년생)의 도움이 컸다. 44) 김운식의 딸도 수녀라고 한다. (박용익의 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