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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 경기도 지역 3·1운동의 전개 193 있지 않았나 짐작된다. 그런데 김성남의 경우 천주교 신자가 아닐까 추정된다. 아버지는 김성천이며, 어머니는 차마리아였다. 부모의 이름으로 보아 그렇게 짐 작한 것이다. 원삼면의 유교적 성향은 양지면 남곡리의 천주교신자들과 포곡면 기독교신자들이 중심이 된 것과는 차별되는 점이라 생각된다. 직업 신분별로 보면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였다. 다만 최상근은 주막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김은수는 여인숙을 운영하였다. 이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김 성남은 당시 학생이었다는 점이다. 김성남는 제적등본에 따르면, 본적은 좌항리 71번지이며, 경주 김씨이다. 좌항리에서 출생하였으며, 내사면 양지공립보통학 교를 졸업하였다. 이 학교는 1911년 내사면 양지리에 만들어졌으며, 수업 연한 은 4년이었다. 1912년 3월 25일 제 1회 졸업생 15명을 배출하였으며, 초대 교장 은 小川興五郎이었다. 성씨별로 보면, 김성남은 경주 김씨였다. 김영달은 광산 김씨이다. 34) 최상 근은 경주 최씨이다. 35) 이용환은 광주 이씨이다. 아들 이원재는 1897년생으로 36) 전차에서 일하다 일본인들과 다투어 만주로 망명하였다 37) 이은표와 이인하는 전주이씨이고, 문촌리의 경우 대부분은 조선시대 영조 정조시대의 무신 이주국 (1701-1798)의 후손으로 전주이씨이다. 이은표는 맹동마을의 양반집안이라고 생 각된다. 증조부인 상식은 생원, 조부인 건흥은 음참봉, 부친은 진사인 창하이다. 생부는 장하이다. 이인하(이인하)의 아버지는 건우이다. 모친은 동몽교관 여주 이 용고의 딸이디. 인하의 부인은 진사 대구 서상빈의 딸인 것으로 보아 지역 유지 34) 김한수(1936년생, 좌항리 37번지)의 증언 35) 제적등본 36) 이용환 제적등본 37) 박용익의 증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