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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다 고문에 턱이 빠져 식사 못하니 세브란스병원에 입원, 궐석재판으로 징역 6월 언도, 6월 15일 세브란스병원에서 사망하였던 것이다. 단순 참여집단은 만세운동에 참여한 인물들로 태형 90에 처해졌다. 원삼면 좌항리의 경우, 이웅한 ,장지선, 장병식, 조용산, 황덕재, 황찬경, 변용섭, 박흥도 등을 들 수 있으며, 사암리의 경우 강신복, 가좌리의 경우 한승원, 허충태, 김춘 일, 박희적, 이병연, 이태현, 이범기, 문촌리의 경우, 이상철 , 이은상, 오경열, 서 천길, 안재섭 등을 들 수 있다. 1987년에 용인경찰서에 발행한 범죄인 명부 이태 현조를 보면 태형을 받은 사람들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다. <용인경찰서발급 범죄인명부> 이태현 1919년 4월 20일 보안법위반 笞 90. 판결 또는 즉결관청 용인헌병대 주소 용인군 원삼면 좌항리 118번지. 당시 24세(1896년 1월 13일생). 양반. 직업 농업 이태현 등 태형을 받을 사람들도 용인헌병대에 끌려가 죽을 고생을 하였던 것 같다. 이태현의 5남 이원칠(1935년생, 수원시 우만동 거주)과 손자 이봉상(1940년 생, 좌항리거주) 등의 다음과 같은 증언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이태현은 1919년 3월 3일경 원삼면 좌항리에서 당시 앞장서 마을 사람들을 동 원하여 항일만세를 부른 이유로 이틀 후 용인경찰서 일본헌병대에 밀고 되어 연행, 유치장에 투옥, 수차례 조사를 받으며 혹독한 고문과 매를 맞고 1919년 4월 16일 곤장 90대를 다 맞고 실신, 항문이 빠지고 피투성이가 되어 들것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