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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 경기도 지역 3·1운동의 전개 189 연, 황경준을 동지로 규합하여 마을사람들을 선동할 사람들에게 통지하는 한편 산봉우리에 봉화를 키게 하는 한편 태극기를 제작하였다. 1919년 3월 21일 0시 반경에 최상근 주막에서 횃불을 들고 만세를 부르며 내려오니 좌항리, 맹리 주민이 합세하였다. 3시경에 좌항을 떠나 사암으로 향하 여 이은표, 이인하가 제작한 국기를 마을 주민들에게 나누어주며, 만세를 고창 하였다. 원삼면사무소에 이르니 고당, 문촌리 주민들이 합세하였다. 원삼면장을 앞세우고 외사면 백암리에 있는 경찰주재소로 가는 길목인 비들기고개에 이르 르니 개울 건너에서 경찰과 헌병대원이 발포하니 무수한 사람이 살상당하고 강 제 해산당하였다. 김은수의 증언내용은 재판기록과 큰 차별성을 보이지 않으면서 그 내용을 보다 풍성하게 하여 주고 있다. 한편 원산면지역에서는 그 뒤에도 만세운동이 계속되었다. 또한 3월 31일 에는 원삼면 사암리에서 300명이, 원삼면에서 4월 2일 500명이 시위를 전개하 여, 발포가 있었다. 원삼면 지역 3·1운동 참여자 원삼지역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한 인물들은 여러 갈래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을 듯하다. 주모집단(태극기 제작자 포함), 행동집단, 단순 참여집단이 그것이다. 주모 집단인 황경준, 최상근, 안명옥, 김은수, 이은표, 이인하 등은 징역 10월에 처해 졌으며, 행동집단인 이용환, 김성남, 김영달, 김창연 등은 징역 6월을 언도받았 다. 이들은 심문 및 수형과정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을 것이다. 행동 집단인 이용환의 경우 1919년 4월초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에 압송되어 반항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