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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을 전개한 인물들에 대한 검토이다. 이들의 활동 역시 3·1운동에 적지 않은 영향 을 끼쳤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신현구(-1909) 원삼면 분촌에 거주화면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당시 24세의 청년으로서 1908년 1월 원삼면 하사마을에서 봉기한 정주원 휘하에서 활동하였다. 1908년 3월 정 주원의 지휘 하에서 동지 수십 명과 함께 죽산군 근삼면 백암리에 잠입하여 이 마을 거주 백윤삼의 집에 들어가 군수물자와 군자금을 조달하였다. 그러던 중 1908년 4월 16일 오전 2시경 죽산군 서삼면 시암시장 여인숙 김운선집에 들어 가 그곳에 숙박 중이던 일본인 中原房吉과 尾寄義市 원희일 등 3명을 총대와 곤 봉으로 구타 처단하였다. 그 후 체포되어 1909년8월 17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교수형을 언도받고 항소하였으나 1909년 9월 13일 교수형을 받았다. 오인수(1868-1935) 제적등본에는 주소지가 원삼면 죽능리 829번지로 되어 있다. 오인수는 원삼면 죽능리 어현(느리재)에서 출생하였다. 명포수로서 용인 죽산, 안성, 여주 등지에 서 활동하였다. 이 지역에서 활동한 의병장 정철화 의병장과 합세하여 중군장으 로 활동하였다. 안성군 매봉재 전투에 참여하였다. 일군에 체포된후 징역 8년을 언도받고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다 한다. 아들 오광선은 신흥무관학교와 서 로군정서에서 활동하였다. 현재 원삼면 죽능리에는 오인수의병장과 후손들의 의병 및 독립운동을 기 리는 비가 서 있다. <의병장 해주오공인수, 3대독립항쟁 기적비>가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