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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 경기도 지역 3·1운동의 전개 177 다. 낮 밤을 가리지 않고 해야만 하는 일이었는데 밤새 물을 퍼내면 “하루 반” 품을 계산해 줬다고 한다. 고되고 반복적인 일에 그나마 흥을 섞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법. 그들은 노동 요를 부르며 일을 했다. 둘이 한조를 이루어 두레로 물을 퍼내면서 하는 일명 “물푸는 노래다” 김희백 이장님과 안치양 옹(82, 원삼 독성리) 이 기억하는 가사 는 이렇게 흐른다. 헤이려어 물넘어간다. 배뜸에 초열이란 열에 하나 열에 둘, 열에 셋---스물이 라 막내딸 시집가기 늦었네. 스물하나 스물둘이요. 안골의 경우 1980년대까지도 금광이 있었다고 하며, 그 흔적들이 농촌지도 소 맞은편 언덕에 다수 남아 있어 금광이 있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볼 때 원삼면 지역의 만세운동은 금광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만세운동의 주된 활동지인 좌항리, 고당리, 맹리, 문촌리 등이 안골과 가까운 지역에 모두 위치하 고 있다. 문촌리의 경우 지금은 고당리로 해서 안골로 가야 하지만 과거에는 문 촌리에서 산 하나만 넘으면 바로 안골 농촌지도소가 나오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광산이 생기게 되면 여러 가지 폐해가 발생하였다. 토지와 가 옥, 무덤 제방을 가리지 않고 파헤치고 보상도 하지 않는 일, 부녀자를 겁탈하고, 희롱하는 일, 음식값을 지불하지 않는 일, 주인 허락 없이 집을 빼앗고 기거하고 집과 가축을 빼앗는 일, 마을을 횡행하며 소람을 피우고 인명을 살상하는 일, 술 과 도박을 일삼는 일, 물가가 치솟고 민심이 뒤숭숭해지는 일 등은 채광지역 어 디에서나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