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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 경기도 지역 3·1운동의 전개 163 일부 천주교 세력 등 다양한 종교세력이 연합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당시 만세운동에 참여한 주민들은 자신의 신앙체계보다도 항일이라는 측면에 보다 주안점을 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종교적인 성향으로 분류하여 3·1운동을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넷째, 투쟁노선에 있어서 공격적인 노선을 지향하고 있다는 특징을 보여주 고 있다. 3·1운동의 경우 일반적으로 평화적인 만세시위를 연상하는 경우가 많 다. 그러나 화성지역의 경우 3월 29일 송산면에서도 노구찌 순사를 처단하였으 며, 화수리에서도 역시 가와바다순사를 무력으로 처단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공 격적 형태는 만주 러시아지역 무장 투쟁노선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섯째, 만세운동 참여 배경이 화수리 주재소의 탄압, 면사무소의 탄압 등 현실적인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특별히는 이 지역이 해안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간석지 매립에 인력이 동원되는 경우가 많았다. 또는 일본인들에 의한 사적인 개 간 및 간척 사업들이 빈번하게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점이 결국 주민들에게 큰불 만으로 작용하였으며, 석포리, 수촌리 등의 사람들이 주로 참여하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한다. 석포리, 주곡리 구술원 일대의 일본인에 의한 간척사업, 수촌리 방 축동 등지의 간척사업은 주민들에게 큰 불만을 야기시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