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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체포와 고문이 동리마다 이어졌다. 한각리·마산동 주민들은 초죽음이 되도록 매질을 당하였고 조암리에서는 주민들이 보이지 않자 큰집들만 골라 불을 질렀 다. 일제의 탄압으로 화수리의 경우 집 19채가 소실되었으며 3명이 사망하였다. 화수리의 피해 상황은 당시의 여러 책자에 생생히 묘사되고 있다. 먼저 정 한경이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1920년에 간행된 『한국의 사정』에서는, 화수리는 그야말로 그림처럼 아름다운 마을인데 일본제국의 야만적인 군대는 이 행복한 마을도 잿더미로 말들었다. 이 마을은 울창한 숲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앞으로는 기름진 논들이 뻗어 있었다. 마을 가운데에는 기와지붕으로 되어 있는 지주의 좋은 집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런데 그집은 이제 깨진 기와장과 부서진 벽돌더미로 변하고 말았다.(중략) 약 40채가 넘는 가구 중에서 18가구만이 남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고 말았다. 물론 바람은 불지 않았으며, 냉혈적이고 살기등등한 일본군인들이 불을 질러 마을을 폐허로 만든 것은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이와 같은 증언을 따르지 않더라도 불타버린 가옥에서는 그런 증거가 많이 발견되었다. 불탄 집과 타지 않은 가옥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불탄 집과 타지 않은 집 사이의 거리는 상당히 떨 어져 있었다.(중략) 완전 무결하게 황폐한 모습이었다. 단 한 장의 이불, 한 가미니의 쌀, 그리고 단 한 개의 그릇, 숫가락도 성한 것이 없었으므로 생존자들은 기아의 위기에 빠져 있었다. 집 잃은 불쌍한 마을 사람들은 이웃마을로 피난해서 문간에서 잠자리 를 구하고 음식과 땔감을 얻어 겨우 생명을 부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