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page

150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동에게 수일 전 발안리에서 시위가 있었을 때 체포된 사람을 일본인 아이가 게 다 (일본식 나막신) 로 구타라는 것을 보고 분개를 견딜 수 없었으니 만세를 부르자 고 말했다고 한다. 이점을 통해서 볼 때 차병한은 3월 31일에 있었던 발안 시위 에 참여하였고, 우정 장안 지역의 만세운동을 제안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또한 차병한은 4월 3일 차병혁과 함께 한 걸음 앞서서 면사무소에 와서 오늘 우정면 사람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자고 했었던 것이다. 한편 석포리 구장인 차병 한은 4월 3일 아침 소사인 엄성구집에 가서 주곡리의 차희식이 많은 동민들을 데리고 장안면사무소로 몰려간다고 하면서 자기의 마을도 가기로 했으니 빠짐 없이 전해달라고 하였다. 또한 수촌리의 차인범 역시 차병한이 다수에게 명령하고 지휘하였다고 증 언하고 있다. 김현묵 역시 우정면 사무소 파괴시 석포리 사람들이 수건으로 머 리띠를 하고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장안리 마을의 소사 인 박복룡 (일명 박선제) 청취서에 따르면, <누가 주가 되어서 위 소요를 기획했는 가>라는 질문에, 석포리의 사람이 주가 되어서 위 소요를 계획하고 다른 마을 사람들을 선동 했었다. 라고 하고 있고, 또한 <폭행자의 주도니 사람은 누구누구인가>라는 질문에도, 간 사람은 모두 폭행했을 것이다. 그 중에 석포리의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가장 활발히 활동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