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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 경기도 지역 3·1운동의 전개 145 열, 김성열, 안종후 등이 그러하며, 정서송 역시 그러하다고 밝히고 있다. 아울 러 수원지역에서의 만세운동 역시 영향을 주었을 것임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라 고 생각된다. 주도적인 역할을 한 주도 인물에 대하여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백낙열을 중심으로 한 천도교 세력 천도교측의 참여를 보면, 서울의 만세운동에 참여한 백낙열이 우정, 장안지역 의 천도교 전교실을 돌며 만세운동을 촉구한데서 출발하였다고 볼 수 있다. 3·1 운동이 발발하자 장안면 수촌리 천도교 남양교구 순회전도사인 백낙열은 김성 열, 안종후 등과 3월 1일 서울의 만세시위에 참여하고 돌아온 후 남양교구 관하 각 전교실을 돌며 거목골 리종근·우영규·우종열, 기린골 금현조·금익배, 장 안리 월교순·금인태, 덕다리의 금창식, 우정면 사기말의 금영보, 고온리의 백 락온, 덕목리의 한세교, 안곡동 박룡석·박운석, 우정면 주곡리의 차희식, 팔탄 면 고주리의 금흥열과 거사를 협의했고, 김흥열은 제암·고주리 천도교 전교사 인 제암리 안종환과 안정옥·안종후 등과 연락을 취했다. 당시 천도교는 고주리 , 장 안, 우정 등지에 일정한 세력을 갖고 있었 다. 또한 백낙열은 수촌리 구장으로서 수촌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였다. 우 정면사무소에 가서 군중들의 선두에 서서 만세를 부를 것을 독려하기도 하였다. 백낙 열은 화수리주재소 앞 개물주막에서도 만 세를 불렀다. 아울러 그때에도 몽둥이를 휘 백낙열 사진(독립기념관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