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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아가곤 했다. 그 당시 장안리에는 그들 인부를 상대로 하는 술집이 12개나 있었 다. 일본인 감독들은 술을 마시면 동리 아녀자를 희롱하는 한편 주민들에 대한 횡포가 말이 아니었다. 당시 장안면 석포리에서는 개간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를 위해 石倉 憲一과 永野藤藏이라는 사람이 서울에서 와서 수로를 만들고 개간사업을 하고 있었고, 장안면에서는 간사지를 수축하기 위하여 인부를 사용하여 일을 하고 있 었다. 군중속에서 “면장을 간사지에 쳐넣고 밟아 죽여 버리라”는 등의 말을 하 는 사람도 있었다. 화수리 항쟁의 주도세력 화수리 항쟁을 주도한 세력은 누구일까. 이 부분에 대하여 김선진은 그의 저서 에서 천도교신자인 수촌리 구장 백낙열에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기독교 계통에 서는 이 부분에 대하여 연구가 없으나 제암리 등의 연구결과를 토대로 검토해 볼 때, 체포된 수촌리의 인물들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많은 점에 주목할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우정 장안지역의 만세운동의 경우 이를 계획하고 주도한 것은 주곡리의 차희식, 석포리의 구장 차병한, 수촌리의 구장 백낙열 등이 아닌가 생 각한다. 그리고 행동대로서 주곡리, 석포리, 수촌리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우정 장안 전지역의 주민들이 참여한 형태로서 파악하고자 한다. 종교적인 측면에서 보면 주곡리, 석포리, 장안리의 유교, 수촌리의 기독교, 수촌리, 어은리, 기린리 등 천도교, 장안리 등의 천주교 등 다양한 세력들이 연합한 형태로서 파악된다. 우정 장안지역의 만세운동은 서울에서 있었던 고종의 장례식에 참여하고 만세운동을 접한 인물들에 의해 전해짐으로써 야기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백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