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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부 경기도 지역 3·1운동의 전개 107 은 증기선을 빌려 대부도와 노흥도, 풍도를 중심으로 의병을 정찰하고 3월 16 일부터 19일까지 토벌전을 전개하기도 하였다. 이에도 불구하고 5월에 들어서 도 수적이 활동이 그치지 않자 일제는 6월 5일 일제는 경찰 8명을 파견하여 섬 들을 수색하기도 하였다. 이에 1908년 8월 27일 남양지방 금융조합이사(色川元市)는 탁지부대신 임선 준에게 보낸 보고에 “이곳 지방민의 상황을 말씀드리면 극히 악질로 배일사상이 가장 격렬한 곳이며 해안으로 남양반도 전면에는 대부도를 주로 하고 작은 여 러 개 섬이 있어 폭도가 잠복하거나 총기 등을 몰래 옮기기에 아주 편리한 곳이 다. 해안에는 아무 시설도 없고 일본인 순사 (남양군 전체에 3명)가 단속하므로 매우 곤란하다. 따라서 일본인에 대하여는 이를 갈며 응수하고 있다.”라고 하고 있고, 1908년 9월 16일자로 탁지부 대신에게 <관유창고 이용에 관한 건>으로 보낸 공 문에서는 “이곳은 인심이 나쁘고 배일사상이 가장 격렬한 곳이다.”라고 하여 이 지역 주민들의 항일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송산면의 3·1운동 전개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그 소식은 서울 인근 지역인 경기도지 역에 즉시 알려지게 되었다. 그 결과 수원에서도 3월 1일 만세운동의 움직임이 있었다. 그리고 3월 16일 장날을 이용하여 팔달산 서장대와 창룡문 안 연무대에 수백 명씩 모여 만세를 부르며 종로를 통과하여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3월 23일 수원역 부근의 서호에서 700명이 시위를 벌이다가 수원역 앞에서 일 경과 헌병대 및 소방대의 제지를 받고 해산했다. 아울러 인천, 안산 등지에서도 알려져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특히 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