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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단계, 5월- 9월 동학농민전쟁의 집강소 단계, 9월 -12월 남·북접이 연합한 제 2차 동학농민전쟁의 단계등 4단계로 진행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경기도지역에 서는 1894년 6월 28일 제1차 동학농민전쟁 발발 직후에 남양에서 최초로 농민 전쟁이 발발하였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남양일대는 경기도에서 일찍부터 동학 이 전파되어 성한 곳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후에도 남양에서는 천도교가 번창 하였던 것 같다. 1909년 8월 남양교구가 전국에서 성미 납부성적이 우수하여 1 등에 선정된 점은 이를 반증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남양지역은 동학농민 전쟁이후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이 농민들 사이에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보인다. 한편 송산면 인근지역인 남양지역에서는 1894년 6월 고을원의 지세수탈 등에 대항하여 농민항쟁이 발생하였다. 또한 1895년 명성황후 시해이후 의병항 쟁이 일어나자 1896년 이천에 있는 수창의소의 김하락 의병장의 격문에 감동되 어 그곳으로 옮겨가 의병활동에 참여하였다. 1907년 8월 남양에서 군대가 해산 되자 동년 9월 10일 신경춘은 부하 10여명을 이끌고 남양군 연안 화령도와 대 부도에서 활동하였다. 송산면은 바다와 접해 있는 지역이다. 그러므로 일찍부터 바다를 중심으로 전개된 의병활동은 이들 주민들의 민족의식 형성에 일정한 역할을 하였을 것으 로 보인다. 즉 이 지역에서는 1908년 3월부터 “수적”의 항일투쟁이 전개되었다. 그들 의병들은 인천 앞 바다인 영종도와 남양만 앞 바다에 있는 대부도, 영흥도 를 근거지로 섬들을 옮겨 다니거나 때로는 남양군 해안에 상륙하여 수원방면으 로 진출하여 토벌대와 항쟁하기도 하였다. 의병들의 활동이 활발해지자 일제는 남양군과 수원군 남부 해안에 출몰하 는 수적들이 대부도 등을 근거지로 하고 있다고 파악하고 인천 세관 소속의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