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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한권으로 읽는 경기도의 3·1운동 3월 21일 북면 야막리·봉양리 주민들이 시위를 벌였다. 이곳에는 천도교 구가 있고, 천도교인이 많은 곳이었다. 야막리·봉양리 주민 5백여 명은 태극기 를 들고 면사무소를 습격한 후 면장을 앞세우고 만세 시위를 벌였다. 이때 주도 자 박창훈이 체포되었다. 3월 31일 북면 소재지 봉남리 주민 4백여 명이 시위를 했다. 이 마을 박성 백·최구홍·유동환·전영록 등은 미리 태극기 30개를 만들어 두었다가 이날 오후 4시경 주민들과 함께 면사무소와 경찰관 주재소 앞을 돌며 독립만세를 부 르고 오후 6시까지 면내 각 동리를 행진했다. 4월 1일 평택의 각 상점들은 일제히 폐점하여 독립운동에 동참하였다. 그 에 앞서 3월 31일 조선인 상점 2개소에 평택우체국 소인이 찍힌 협박장이 배달 되었는데, 다음날 폐점은 그에 호응한 것이었다. 4월 1일 밤 평택에서 대규모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밤 10시 반 경 평택 주 변 일대에 산봉우리마다 봉화를 올리며 독립만세를 외쳤으며, 10여개 마을에서 3,000명의 군중이 평택으로 모여 들어 새벽 2시까지 만세시위를 벌였다. 일제 경 찰은 시위대를 향해 발포를 자행하여 1명이 숨지고 4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그 밖에 경상자가 있었다. 그날 팽성(부용면)에서도 평택 구읍 뒷산에서 봉화를 올리 며 평택역 시위에 합세하였다. 같은 날 고덕면 율포리에서 500여 명의 농민들이 평화시위를 벌이고, 평택역 시위에 합세하려 달려갔다. 청북면에서도 면민 수십 명이 마을에서 만세를 불렀다. 이는 오성면 안화리에 사는 안육만이 김원근과 함께 청북면 백봉리 큰길에서 시위를 촉구하고 오성면 안화리와 청북면 백봉리 주민 수십 명이 호응하여 일어난 것이다. 북면 은산리와 봉남리에서도 시위가 벌어졌다. 은산리 정경순이 주도하여 30명 가량이 은산리 산 위에 올라가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