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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 權熺 1900(고종 37) ∼ 1955 독립유공자. 본관은 안동. 시흥 출생. 1919년 4월 7일 시흥군 군자연(현 시흥시 군 자동 및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 등)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1919년 4월 6 일 시흥군 장현리(현 시흥시 장현동) 그의 자택에서 꾀 발의하고 집펼한 〈비밀통 고 (秘密通告)〉라는 제목 아래 각 마을에서 차례로 회담하도록 그럼으로 표시하였 다. 또한, “조선이 일본에 강점된 이래로 받은 10여년간의 학정에서 벗어나독립하려 한다. 우리들은 이 기쁨에 대하여 오는 7일이면 구시장에서 조선독립만세를 같이 부 르려고 한다. 각 동민은 구 한국가 1개씩을 휴대하고 모이라.”는 문구를 작성한 후 동 민에게 회람하였다. 이로 인하여 일본경찰에 붙잡혀 경성지방법원으로부터 정 역 1년 을 선고받았다. 1986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 었다. 묘소는시흥시 장현동산 89번지에 있다가시화지구외곽도로토취장에 편입되어 1993년 장현동 산 72번지로 이장하였다. 《참고문헌》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1971)' 시흥군지(시흥군, 1988)' 대한민국독립유공자 공훈록(국가보훈처, 1988), 시흥의 인물과 행적(시흥시, 1995), 경기도항일독립운동사(경기 도, 1995). 장수산 張壽山 1900(고종 37) ∼ 1981 독립유공자.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중옥(重玉), 호는 매암(梅嚴). 일명 장순한(張 i훔輪). 인조반정 공신인 덕창군(德昌君) 신(輔)의 11세손으로 시흥군 군자면 장곡리 (현 시흥시 장곡동) 출신이다. 군자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20세 때인 1919년 3월 1일 손병희(孫、秉測) 등이 조선독렵의 뜻을외친 것에 찬동하여, 이해 4월 7일 장현동 출신의 권희(權熺)와 함께 시흥군 군자면 일대의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는 권회 의 집에서 전날 제작한 비밀통고문(秘密通告文)을 같은 동리의 구장인 조카 이종영 (李鍾榮)의 집 앞에 놓아두고 많은 주민에게 회람시키려다가 일본경찰에게 붙잡혀 징역 10월의 옥고를 치루었다. 해방 후 1952년 거모동에 있던 군자초등학교 오이도 간이학교(금호간이학교)를 장곡동으로 이전 ~J--곡국민학교를 설립하는데 앞장섰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 었다. 묘는 시흥시 장곡동 매골에 있다. 46 I 연구조사보고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