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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거리 수암면사무소지 수암주재소터 안산보통학교지 안산향교지 도살장터 중이라는 숫자는 수암면민이 거 의다참석했음을알수있다. 이미 전날 읍내의 비석거리에 모이라는 통문을 각 고을의 이장 에게 돌렸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었다. 이날의 시위는 유익수와 윤병소가 군중의 선두 에 서서 태극기를 휘두르면서 지 휘 인솔하여 수암면 읍내에 있는 수암경찰관주재소·수암면사무 소 · 안산보통학교 및 공자묘(孔 子蘭 : 안산향교) 앞으후 몰려가 서 조선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 를 벌였다.62) 각지역에서 시위대 를 인솔하고 온 상황을 살펴보면 아래와같다. 윤병소(尹秉昭)는 29일 화정리 (花井里)에서 이봉구(李鳳九)로 부터 비석거리에서 만세시위가 있을것이라는말을듣고자기 동 리 사람 30여 명과함께 태극기를 만들어 시위 대열에 참여하였다. 월피리 (月破里)에서 잡화상(雜 貨商)을 경영하고 있던 유익수 (柳益秀)는 성포리 (聲浦里) 주민 30여명 가량아 “독립만세를 부르기 위하여 비석거리로 간 다”고자기 집 앞을지나가면서 자기를유인하여 비렵동애짧立洞)으로향하여 같이 갔다. 이 미 그곳에는 약 2천 명 정도 모여 있었다. 이 때 성포리 구장이 유익수에게 “이 군중 속에는 난폭한 자도 았으니 만일 주재소 등에 폭행을 가하여도 곤란하니 당신이 좀 조정하여 달라” 는부탁을하자, 그는군중을지휘하여 도살장으로가서 그곳에서 홍순칠이 만든기를그에 게서 받아 가졌다. 이때 순사가 “읍내로 가지 못하니 해산하라”고 명령하였으나 앞서 홍순 62) 국가보훈처, r독렵운동사자료집』 5권 1971, 279-282쪽 I 암산지역의 독립끝동 I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