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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13절 3. 1운동의 전개 (1) 안산 3 . 1운동의 개관 3월 말 얀산지역을 비롯한 경기도 지방의 운동이 적극적으로 전개된 데에는 3월 하순 서울 에서 대중 시위가 재개된 것에 영향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3월 22일 서울 남대문에서 노동 자대회가 열린 이후 서울에서는 매일 시위가 일어나서 보통 하루 10회 내외의 시위가 장소 를 달리하며 계속되었고 27일 하룻 동안 20회의 운동이 발생하였다. 이때의 운동은 투쟁양 상도격렬하여 경찰서 · 파출소습격 및 기물파괴, 전차에 대한투석 및 조직적인 파업도감 행되었다. 이러한 서울의 시위소식은 인근의 경기도 지역으로 전파되어 이 지역의 운동을 고무하였다.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도의 중심인 고양군과 시흥군 내에는 서울과 생활권을 공유하는도시적 성격이 강한지역이 많았다. 3월 하순에서 4월 -"J-'순까지 경기도는전국에 서 가장활발하게운동이 전개된곳이었다. 특히 당시 안산지역이 속해있던시흥군 · 수원군 에서는 각각 23회 . 21회의 시위운동이 가히 폭발적으로 전개되었다.%) 3월 말부터 동시 다발적이고 격렬하게 전개된 투쟁은 4월 상순에 도의 외곽으로 확산되어 갔다. 3월 26일부터 4월 5일 사이의 경기도 운동은 전국에서 가장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이 에 대해 조선군참모부는 ‘경성 이외의 경기도 각소(各所)에 있어서 본 기간중 가장 창궐을 극하고소요의 개소도 70수개소에 이르고폭행을 영(違)한지점도적지 않다’라고보고하 고있었다. 이와 같이 농민 대중의 시위운동이 대규모로 적극적으로 전개됨에 따라 일본 군경은 시위 운동자의 대량 학살과 피검자에 대한 무자비한 고문으로 운동을 종식시키그l자 하였다. 결국 3월 말∼4월 초에 걸친 격렬한 투쟁은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에 의해 진압되었다. 얼제는 조 선 민중들의 투쟁의지를 철저하게 짓밟기 위해 발포와 더불어 야만적인 대학살을 자행하였 다. 4월 15일 일본군은 일본 경찰이 살해되 었다는 이유로 수원군 향남면 제암랴 부락민 30 여 명을 교회당에 모아놓고 방화하는 한편 불을 피해 도망나온 사람들에게는 발포하여 학살 하였다. 또한 제암리와 인근 송산면 사강리 등의 민가에도 방화하여 수원군에서만도 8개 연 15개마을 317호가불타고, 39명이사망하였다.이후경기도지방의운동은거의종식되었다. 이와 같이 경기도의 3 · 1운동은 3∼4월에 걸쳐 지속적으로 전개되는 한편 3월 하순 이후로 는도내 전 지역으로확산되면서 적극적인 참여에 의해 대중적인 투쟁으로발전해 갔다.운 동이 전반적으로 대중투쟁의 양상으로 전환되어 가던 3월 하순 이후에 운동이 활발하게 전 6이 경기도사면찬위원회, 1995, 『경기도항일독렵운동사j 3] | 연구조사보고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