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page

3·1 독립만세운동 기념비건렵 기초티자료 조사 1. 기념비 건립의 타당성 및 기대효과 <기념비 건립의 타당성 > 1) 역사적의미 1919년 3· 1운동은 1919년 3월 1일 한민족이 일제에 항거하여 거족적으로 일으킨 항일 민족투쟁이며, 세계사적으로유래를찾기가어려운비폭력, 비무장투쟁이다.일제강점기에 시흥군 소속이었던 얀산지역은 크게 4곳에서 3· 1운동이 얼어났다. 국권침탈 과정에서 시 작된 안산의 수 많은 항일 저항정신을 이어온 수암면(秀岩面) 비석거리 만세는 1919년 3월 30일 오전 10시 구얀산치소(舊安山治所)로 면사무소와 경찰주재소, 보통학교, 향교 등이 집 중되어 있는 비석거리[輔 立 洞]에 18개 리에서 2,000여 명의 군중이 모였다. 군자연(君子 面) 지역의 만세 시위 징곡리(長갑里) 주민들이 3월 29일과 4월 4일에 두 차례에 걸쳐 오전 11시 경 주재소부근에 약 1,000여명이 집합하였다. 반월면(半月面)지역의 만세시위는 4월 1일 반월면 반윌장(半月場)에서 600여명의 주민이 평화시위를 벌였다. 대부도지역 만세시 위 3월 31일 대부면(大卓面) 신남리(新南里)에 사는 김윤규(金允圭) · 노병상(盧秉相) · 홍 원표(洪元杓) 등의 주도하에 4월 l일 오전 3시 경 같이 집 밖에 나가 ‘조선독립만세’를 외치 고, 이로 인하여 모인 이민(里民) 10여 명과 함께 그 곳의 주막집 앞에서 태극기를 휘두르면 서 ‘조선독립만세’를같이불렸다. 이 과정에서 유익수(柳益秀, 1870(고종 7)∼1926,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 윤병소(尹 秉집, 1893(고종 30)∼1919, 1992년에 대통령표창) · 홍순칠(洪淳七, 1877∼1932, 1992년 에 대통령표창) · 윤동욱(尹東旭, 1891∼1968, 1995년 대통령 표창) - 김병권(金秉權, 1878∼1953, 2006년 대통령표창) · 이봉문(李奉文, 1890∼?, 1986년 대통령 표창, 1990년 | 독립만세푼흉 기님비건립 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