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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소릅 습격하고 불태워버렸습니다. 이때 주재소 안에 있던 얼본인 순사 가와 바다가 권총을 발사하며 도망가자 장소진 둥과 함께 추격하여 이봉구 등 수십명 의 군중파 함께 그를 격살시키고 격렬하게 만세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만세운 동 이후 잠시 산속으로 도피해 있던 중 4월 5일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1920년 12 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요·살인‘방화와보안법 위반동의 힘의로징역 15년 형을 언도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복역하다 9년 2 개월 만에 출옥하였습니다. 출 옥한 뒤 69세의 나이로 1939년 10 월 18일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 습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8년에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현재 차희식 선생의 묘는 동작동 국립묘지에 있습니다. 선생이 기거하였던 집이 현 화 성시 우정읍 주목리 81번지에 일부를 제외하고는 원형이 보존되어 있는 상태로 남아있어 고인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느껴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