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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한 계획을 알려서 인근 주민들에게 몽퉁이를 가지고 면 사무소로 또이도록 연락하는 한편 자신은 석포리 주민들에게 “오늘r 한국독립만 세를 외칠 작정이니 각 집마다 남자 1명 이상이 나오라”고 만세운동;에 참여하도 록 독려하면서 , 주독리 구장 한규명(한규회)에게 “동리 사람에게도 전달하여 모 두 나오기로 되어 있으니 당신도 쌍봉산까지 나오라”하여 동리 뒷산에서 만세를 부르고 우정면 주콕리와 석포리 주민들의 선봉에 섰습니다. 차희식 샌생은 군중 200여명이 모인 장안면 사무소에서 선두에 서서 투석과 몽 퉁이로 면사무소 건물을 부수고 공문서를 파기하였습니다. 점차 꾼중이 1천여 명으로 늘어나자, 다시 이들을 인근의 쌍봉산으로 인솔하여 그 곳에서 독립만세 를 외치게 하였으며, 이어서 차병혁 ·차인범과 함께 2천여명으로 늘어난 만세시 위 군중들같 인솔하여 우정면 사무소로 가서 그 곳의 건물을 파괴하고 집기류와 공문서를 붙태워 버렸습니다. 그리고 시위 군중들과 함께 회수리에 있던 경찰관 ι、 -、‘ 껴’| 우 <i펙석판결윈경성복심법원,1927년 2월 %일) > ~1 빼 lJ! "' 때l It Ill ‘ 9 홉 훌 ~, .. " i획용t "' ‘ 해F 냥효 째 ::'. 용흥r * = ‘ "' λ ~톤 경E J틀f ~ 월b "IQ ~ 양'=1 ‘ 행ζ -&∼ 홍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