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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 가서 자신들을 괴롭 혔던 서류와 집기류들을 피손하고 불에 태워 버렸습니다. 의기에 찬 군중들은 우정면사무소를 파괴한 뒤 장안면장을 다-시 앞세워 태극 기를 들게 하고 군중의 선두에 세운 뒤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오후 4 시경에 회수주 재소로 몰려갔습니다. 주재소 앞에서 군중들은 일제히 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주재 소에 돌을 던졌습니다. 이때 놀라 도망치는 가와바다(川端豊太郞) 순사가 권총 을 발사하여 시위군중 1명이 넘어져 숨졌습니다. 이에 격분 한 군중은 가와바다 순사 를 추격하였으며, 가와바다 순사가 도망가며 쏘아댄 총에 3명이 더 쓰러졌습니다. 도망가던 가와바다순시는곧수십 명의 군중에 포위되었고, 차희석, 장소진, 이봉 구 등이 칸 F사를 처단하였습니다. 일본인 순사 가와바다는 1917년 장안변 화수리에 주재소가 설치되자 부임하였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 들을 가혹짜게 취급하였는 〈 시위직후우정면사무소현장그림 > 、 、 、 、 、 、 、 ‘ - - - - - - / / / I l 우정면사무소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