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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으며 제암리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 3·1운동의 주동자로 인정한 천도교도와 기독교도인 주민들을 제암리 교회에 불러 모았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 모두를 교 회에 가둬 놓고 불을 질러 30여명의 고귀한 생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아리타는 제암리 촌꽉의 대부분을 불을 질러 태워버리고 엄청난 살육을 자행하였습니다. 향남변 제암리는 벌안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농촌으로 모두 랬호의 농가가 있었습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종교적 믿음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 이전에 동학이 포교되어 고주리의 김흥렬을 중심으로 천도교의 포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