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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형은 경기도 포천 가산(加山) 사람이다. 1919년 3·1운동 이후 국내에 있던 이헌교(李憲敎)·이민태(李敏台)·한남수(韓南洙)·이규갑(李奎甲)·김사국(金思國) 등이 서울시내 내자동 한성오(韓聖五)의 집에서 모임을 갖고 임시정부 및 국민대회에 관한 구체적 방안을 토의하고 국민대회 취지를 작성하였는데 이때 13도 대표 25인 가운데 1인으로 참가하였다. 그후 만주로 망명하여 1919년 12월 길림성 관전현에서 대한독립단에 가입하였으며, 박장호(朴長浩) 총재로부터 경기도 지단을 조직하라는 밀명을 받고 1920년 1월 경기도 도시찰 전권위원에 임명되어 서울로 들어와 상왕십리에 거주하였다. 그리하여 비밀리에 서울에 중앙본부를 조직하고, 각 도·군에 지단을 설치하기 위하여 임명장·사령서·격고문·경고 경향 각 부호문·경고 동포 왜관리문·임시통칙·군자금 영수증 등 수천 매의 유인물을 제작하였다. 이어서 단원을 확보하고 군자금을 모금하는 한편 독립군의 국내 진입 시 일제히 호응할 수 있도록 사전 준비에 동분서주하던 중 일경에게 탐지되어 체포되었으며 1921년 9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 제7호 위반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출처 : 보훈처 공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