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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현 지사 생가지(南慈賢 志士 生家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인 남자현(南慈賢) 지사는 여성운동의 선구자로서 1873년 영양군 석보면 지경리에서 통정대부(通政大夫) 정한공(珽漢公)의 셋째 따님으로 태어나 부모님 슬하에 한학을 공부하며 성장, 1891년 영양군 석보면 답곡리에 거주하는 의성김씨 김영주(金永周)와 결혼, 부군(夫君)이 의병으로 활동하다가 1896년 청송진보지역전투(靑松眞寶地域戰鬪)에서 전사하자 민족계몽운동에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유복자인 김성삼을 데리고 만주로 들어가 여성독립운동가로 활동하였으며 만주에서 재만조선여자교육회(在滿朝鮮女子敎育會)를 설립하여 여성 계몽운동에도 앞장섰다. 1927년에는 길림의 안창호(安昌浩) 연설장에서 47명의 독립지사가 체포되는 위기를 맞았으나 그때 중국 당국과 교섭하여 전원 석방되도록 함으로써 지사의 명성은 중국사회에서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 국제연맹조사단이 만주에 오자 자기의 무명지를 잘라 조선독립원(韓國獨立願)이라는 혈서(血書)를 전달하기도 하였고, 1933년 3월 1일 일제가 중국동북지역을 강점하고 괴뢰정권 만주국을 세운 1주년 기념행사날 일제의 무등신의(武藤信義) 만주국 전권대사를 암살하려다 하얼빈에서 체포되어 경찰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받아 사경이 되어 출옥하였으나 8월 22일 하얼빈 조선여관에서 순국(당시 61세)하였다. 정부에서는 지사의 독립정신을 기려 1962년 3월 1일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하였다. 영양군에서는 지사(志士)가 출생한 이 자리에 1999년 11월 30일 대지 4,919㎡에 본채 및 부속사를 복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