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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독립을 위해 살다간 기장 사람들 1910년 일본 제국주의는 우리나라의 국권을 강탈하고 조선총독부를 설치해 식민지배 체제를 강화하기 시작하자 전국 방방곡곡에서 일제에 저항하는 항일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기장에서는 일제으 식민지 교육 강화에 맞서 권상중, 박인표 등 기장의 선각자들이 민중교육만이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는 국권회복의 지름길이라 생각하고 스스로 성금을 내어 첫 사립학교인 명정의숙을 기장읍 동부리 옛 베틀공장에서 설립했다. 당시 학생들은 일찍 민중 계몽운동의 중요성을 깨우친 기장 선각자의 부인들과 여성들로 40명이었고 교수진은 기장 유림 출신으로 한시에 능한 박란수, 박우돌, 박세현 등이었다. 1914년 박란수는 명정의숙가를, 박우돌은 애국이 노래를 지었다. 이 두 노래는 구구절절 나라를 하루 빨리 되찾아서 국권회복을 하자는 명문장의 가사로 엮어져 학생들의 민족의식을 크게 고취시켰다. 1916년 기장광복회는 동래와 양산보다 먼저 조직되었으며 당시 명정의숙 교장 박세현이 총무를 맡아서 활동하였다. 그는 1917년 10월 군자금 모금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붙잡혀 갖은 고문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 동지들의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하다, 1918년 6월 모진 고문 끝에 부산형무소에서 순국했다.